신순희
수필가
대표에세이문학회 동인, 서북미문인협회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아버지는 내 성(姓)이 납 신(申)자라고 하셨다. 납이 무슨 뜻인지 여쭈었다. 납은 잔나비이고 잔나비는 원숭이다, 라는 말씀이셨다. 그 의미가 싫었다. 하필 원숭이라니, 호랑나비도 아니고 야옹 나비도 아니고 잔나비라니, 어감이 좋지 않았다. 왜 잔나비가 원숭이인가 궁금했지만 어린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잽싸고 잔꾀 많고 잔재주 많은 동물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게 맞는 말일까.
2016년 ‘붉은 원숭이해’다. 붉은 해를 안고 있는 원숭이는 열정이 넘친다니 올해만큼은 재주도 부리고 실리도 살리는 한 해로 살아볼까. 매해 순풍에 돛 단 듯 살기를 빌었다. 올해는 고여 있는 우물 안에서 나와 푸른 하늘 뜬구름이라도 잡아보겠다. 살랑 바람도 타고 살짝 재주도 부려 볼까나. 내 이름이 잔나비라는데 망설일 게 무어냐.
재주를 부리며 까불다 나무에서 떨어진다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속담이 있다. 잘난 척하지 말라는 뜻이겠다. 제 꾀에 제가 빠지는 우(愚)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진중하고 그러나 진취적인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원숭이는 솔직 대담하고 진취적이다. 어릴 때 불렀던 노래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하면서 마냥 늘어지는 타령이 ‘백두산 벋어내려 반도 삼천리’까지 가는 걸 보면 그렇다. 원숭이로부터 시작해서 백두산까지 얼마나 앞서가는가. 원숭이가 발랄하고 영리하긴 한가 보다.
동물원의 원숭이. 울타리 안에서 촐랑대며 잔재주를 부리다 사람들을 골탕먹이고 제가 되레 즐거워하는 동물이 어디 또 있을까. 제 입장에서 인간을 가둬 두고 즐기다니, 가소롭기도 하고 건방지기도 하고. 울안에 갇힌 게 원숭이인가 인간인가. 생각하기 나름이겠다. 원숭이는 작은 울타리에 인간은 커다란 울타리에 갇힌 건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올해는 울타리를 벗어나 내 한계를 넓혀 볼 작정이다.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전능자에게 구해 보겠다.
열두 띠 동물 가운데 유독 인간을 닮은 동물. 서커스단에서 사람 옷을 입고 등장하는 원숭이를 생각해 보라. 꼬리를 감추고 사람 흉내를 내면 깜빡 착각할 수도 있다. 사람 얼굴을 폄하할 때 ‘원숭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 않는가.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에게 젖을 먹이는 품새가 사람과 흡사하다. 원숭이가 재수 없다는 말은 이런 연유에서 나온 말 아닐까. 원숭이 주재에 감히 인간을 넘봐, 라는.
중국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은 손에 ‘여의봉’을 들고 하늘을 나는 ‘근두운’을 타며 도술을 부린다. 종횡무진으로 날아다니는 조각구름도 신기하고 길이가 마음대로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무기도 희안히다. 원숭이가 재능꾼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드는 설정이다.
올해 나는 어떤 설정을 놓고 나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확실한 것은 나 자신에게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점차 잃어가는 자신감을 회복하겠다. ‘만물의 영장(靈長)’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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