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이 처음 생기던 초창기에, ‘밥 해놓으라고 전화하려고 그러냐? 왜 굳이 다니면서 전화하는데?’ 하던 때가 있었다.
약 17 년 전 이야기. 지금은 당연한 내용이라, 의문제기 자체가 더 문제로 읽힌다.
요즘 휴대폰이 없다면 불안하고 위험할 거 같은 상상을 한다. 그런 핸드폰을 나는 참 늦게 장만했다. 011로. 그때 친한 후배가, ‘선배님 핸드폰 샀으니, 대한민국사람 다 샀네요~~’ 하며 반색을 해서 함께 웃었다. 핸드폰이 없으면 나보다 남에게 불편을 줄 지경이다.
그렇게 011을 오래 가지고 살다가 2년 전에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010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때 번호를 고수하기를 주장하는 내게 판매원은 011로 자동변환되니 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2014년 되면 모두 010이 되니까 지금은 011, 010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루 지나서 지인에게 문자를 했더니 지인에게서 ‘누구세요?’ 라는 답변문자가 왔다. 그 쪽에서 내 번호를 011로 저장했는데 발신한 내 번호가 010이니 그 쪽에 나인 줄 몰랐던 것이다. 깜짝 놀라 주말인데도 급하게 대리점으로 가서 항의하니 설명에 서로 이해가 달랐으며 011을 고수하고 싶으면 새 휴대폰을 폐기환불하고 다시 구입해야 한다고 한다.
막상 그런 방안을 들었으나 열심히 판매한 사회초년생 원 담당직원의 실망하는 모습도 떠오르고 나도 휴대폰 사느냐 들인 시간과 공이 아까와 아쉽긴 하지만 내년에 모두 010이 된다는데 그냥 쓰겠다고 하고 말았다.
011. 살면서 지키고 싶었는데 지킬 수 없었던 게 하도 많아서 처음 받은 휴대폰 전화번호라도 지켜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아끼던 프린터 복합기가 모델이 단종(斷種)돼서 부속이 없다는 이유로 고칠 수가 없었다. 더 싸고 좋은 게 나왔다며 구형은 잉크가 비싸니 어차피 잉크값 싼 새 모델을 사는 게 이익이니까 그냥 그거 버리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 복합기를 샀을 때 편하게 방 안에서 내가 필요한 한밤 중 시간에 천연색 그림을 반짝이게 출력했을 때 얼마나 기뻤던 가. 흑백도 어떤 프린터보다 깔끔하고 선명하게 나왔었다. 그 전에 어쩌다 한 장을 출력하려고 버스를 타고 대학 앞 복사 집으로 가던 때를 생각하면 복합기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잘 관리해 오래오래 쓰고 싶었건만 이제 잉크가 가득해도 부속이 없어서 고칠 수 없고 결국 포기해야 했다.
나에겐 아끼는 USB형 MP3가 있었다. 문화행사의 상품으로 받은 S전자 제품인데 디자인과 성능이 여러모로 완벽해서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던 나의 애장품이었다. 주머니 속에 넣고 한 손으로 조물락조물락 조작하면서 춘하추동 온 군데를 다니면서 함께 했었는데 얼마 전 부주의로 분실하였다.
손에 익숙한 제품이라 같은 걸 사려하니 이미 S사에서는 MP3를 생산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대신 유사한 중소기업 제품을 하나 샀는데 겉 만 비슷했을 뿐, 품질이 많이 떨어져 사용에 불편을 느끼는 중이다.
생물도 종의 다양성이 생태계를 오히려 균형 있게 살리듯이 제품도 다양한 종을 유지해야 오래 꼭 필요한 것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전자제품은 반려(伴侶) 수준인데 제품의 단종은 반려동물의 실종처럼 오래 서운함이 남는다.
‘좀 오래 된 것도 쓰고 싶은 사람은 그냥 쓰게 쫌!’.
기사/사진=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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