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라면 국립, 시립, 혹은 사립 미술관들이 있지만 내가 다니는 길 근처에는 구립(區立) 미술관이 있는 데, 얼마 전 1주년을 맞았다.
이 미술관은 종로구립 미술관으로 경복궁 서쪽 이라 하여 요즘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부상하고 있는 서촌, 옥인동에 위치한 고 박노수 (1927~2013) 화백이 1973년부터 2011년 까지 38년간 살았던 개인 집을 2011년 구(區)에 기증하여 2013년 9월 12일 개관한 곳이다.
통인시장과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골목 길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개관이래 일일 관람객 수가 상당히 많아 현재까지 성황을 이루고 있다.
미술관이니 만큼 방문객은 그림과 기타 전시물 감상이 위주가 되어야겠지만 관람객들은 가옥구조나 정원조경 등 집 전체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역시 미술관이라도 딱딱한 공공건물이 아니라 실제 살았던 개인 집을 구경한다는 게 독특한 재미를 더하는 것 같다.
한문문패와 미술관 안내가 있는 집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마당 우측으로 정원과 앞쪽으로 작은 동산도 보인다. 정원은 수석, 석등, 석상, 그리고 대나무 단풍나무 모란 작약 등 조경수와 식물들이 잘 꾸며져 있고 아치형 현관을 지나 2층집 실내로 올라가면 박노수 화백의 그림들과 관련 동영상 그리고 다양한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유난히 반짝이는 마루바닥과 큰 창문 들과 밝은 햇살이다. 다락방에서 내려다 보는 뒷동산과 방안에 벽난로, 그리고 실내 공간의 오밀조밀한 구획은 이 건물이 1937년 지어진 그 시대의 가정집이라는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 집의 방안에서 화가와 가족들은 분주하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부대끼고 혹은 휴식을 가지고 또 정원에 나가 친지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리라.
2층에 화가의 작업실로 썼던 방에는 화가가 쓰던 물감과 붓들이 놓여져 있고 창문을 통해 동네 집들의 지붕이 다닥다닥 보인다. 명성을 얻은 화가로서의 그의 그림은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을 표현한 그림이 많았지만 현실에서 그는 서민에 둘러싸여 그들의 숨소리를 느끼면서 그림을 그린 것 같다.
50대에 교수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의 길을 선택하면서 그는 이 화실에서 깊은 고뇌에 빠졌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창으로 보이는 지붕 밑에 사는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그의 그림에서 추구한 초월의 세계를 잠시나마 안게 해 주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일생 갈고 닦은 자신의 소중한 집을 공개하고 아울러 소장품 1000점을 구에 기증한 화가의 마음은 범상치 않다. 국가도 아니고 시(市)도 아니고 그간 바라만 봤을 주민에게 문을 열고 들어 오라고 동네에 기증한 것이다.
재산을 어떻게 모으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는 많다. 그러나 모은 재산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잘 남기고 갈 것인가. 재산이 많든 적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결정은 쉽지가 않다.
그래서 화가의 결정은 더욱 도드라진다. 그것은 그의 생애 동안 추구한 그의 예술이 도락이 아니라 진실한 삶의 투영이었다는 증거이며 예술가의 위대함이기도 하다.
모쪼록 이웃 사랑을 실천한 예술가의 기증으로 꾸며진 구립 미술관이 번창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길 염원한다.
기사/사진=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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