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거나 창으로 내다보면 건물과 사람이 보인다. 그 사이로 식물들이 있다.
맨 처음 가로수가 보이고 길가에 꾸민 잔디나 시멘트 건물 근처에 조경으로 완성된 꽃과 나무들. 차들이 지나가 먼지가 가득할 때는 안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비가 오고 추운 날씨에도 꿋꿋이 버텨 재개발로 철거 중인 옛 건물의 잔해를 묵묵히 내려 보고 있는 큰 키의 가로수 나무들을 보면 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랜 시인은 몇 살까지 살았던가? 스무 살을 너머 삼십 사십 살면서 자기 가정을 이루고 자녀의 탄생을 보면서 우리 아이 만 또렷이 보이고 다른 것은 다 희미하게 보이는 경험을 했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십세 너머 연로해가는 부모님을 느끼며 사회의 중심에서 축이 돌아가는 힘을 받으며 쉰 세대를 공격하다 결국 이해해가는 나이를 산 사람이라면 과연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늘을 보면 부끄럽고 땅을 보면 미안하지만 나무를 보면 함께 숨 쉴 기회를 얻는다.
이상주의자였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8년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사타트 대통령, 베긴 수상과 회담을 하면서 캠프 데이비드 산장을 회담 장소로 택했고 성공적인 합의를 이끌어 냈다.
나중에 영부인 로잘린은 녹색환경에서는 누구나 마음이 너그러워 지기 때문에 회담장소를 대통령의 산장으로 정했다고 회상했다. 있어도 있었다는 기억이 없고 없어지면 있었던 거 같기도 한 그런 서울의 식물들 가운데 텃밭에 자라는 농작물들이 있다.
자기집도 아니고 소유권이 분명한 농장도 아닌데 길가에 빈 땅이 있다고 씨를 뿌리고 작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아마 농업의 경험이 충만한 사람들 일 것이다. 예전 다른 구에 살 때 텃밭을 고르는 50대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그 분은 초면인데도 거부감없이 대답을 하신다. 방치하면 쓰레기 장이 될 뻔한 비탈진 돌길 한 구석에 텃밭을 일구던 그는 익숙하게 흙을 고르며 말했다. “우리 시골에서 나 자랄 때는 마을에 자가용 있는 사람이 가장 부자고 그 다음이 전축있는 집이었는데 요즘은 그 시절 가장 부자처럼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단 말이죠!” 다른 말도 많이 들었는데 나는 텃밭을 보면 늘 그 분의 말이 생각난다.
오늘 집 동네 평소 다니던 반대 방향으로 가파른 돌층계를 올라 고개를 넘어가는 길에서 텃밭을 봤다. 장독과 빨래와 방금 다독인 듯한 텃밭 앞에서 예전에 만났던 아저씨와 비슷한 분위기의 아저씨를 만났다 ‘이건 무슨 작물이예요?’ 라고 물으니 ‘김장무’라고 한다.
묘목처럼 아직 작은 식물이 정말 김장철에는 무우가 될 것인가? 작물을 키운 경험이 없는 나는 반신반의 한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그때 무우가 열리면 알게 되겠지. 그때 다시 사진을 찍어 보면 되겠지.
공공부지에 개인 텃밭을 가꾸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곳에 수확물이 나오면 누가 소유할 것인가? 땅임자인가 텃밭을 일군 당사자냐? 텃밭은 이런 모든 갈등을 알고도 가꾸어 진다. 포기할 만큼 만 소유하며 추구한다. 오늘 텃밭을 구경하고 돌아와 빈 책상에 앉으려니 내 책상이 오늘 본 텃밭의 크기와 같이 보인다.
기사/사진=신순영 조이시애틀뉴스 서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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